석기시대 환경에 적응된 경제 태도

입력 2015-11-06 20:33  

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26) 반시장정서의 뿌리

반시장·가부장적 간섭, DNA에 각인…수만년간 유지돼 '시장도덕' 손상




사람의 두뇌에는 경제를 인지하고 다루는 다양한 성향(이론)이 각인돼 있다. 이 중에는 보기 듣기 말하기 능력처럼 본능적으로 갖고 태어나 별도의 학습 없이도 습득한 선호와 믿음이 있다. 예를 들어 생산보다 나눔을, 자유보다 평등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와 경쟁에 대한 혐오, 부자에 대한 의심과 질시 등이 경제에 대한 본능적 지식에 기초한 성향이다. 이런 선천적인 경제지식을 ‘민속경제학’이라고 한다. 경제학을 배우지 않은 대중이 가진 경제지식이다.

이런 경제지식은 자유 경쟁 재산 인격존중 약속이행 등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태도에 매우 적대적이다. 그래서 인간심성은 본능적으로 친(親)사회주의, 반(反)시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 거성 하이에크의 말이다. 자유와 재산권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천부인권이라는 주장은 틀렸다고 보는 이유다. 자유와 시장 관련 도덕·인지적 정서는 셈하기 읽기 쓰기 능력처럼 각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인 후천적 학습을 통해서 비로소 습득할 수 있다. 친자유시장 정서·믿음·지식은 후천적 학습을 의미하는 ‘문화적 진화’의 산물이라는 게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 등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핵심적 진화사상이다. 만약 인간이 본능적으로 친시장 성향이라면 자유주의는 자동적으로 성공할 수 있고 모방을 통해서 확산될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경제활동도 아주 자유로울 것이다.

따라서 왜 인간의 정신구조가 본능적으로 반시장적인가의 문제를 주목해야 한다. 인간의 정신성향은 생물학적 진화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신생 인류의 본능과 심리적 구조가 형성됐던 원초적 환경이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단초를 제공한다. 이 환경은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었다. 첫째, 원시인의 사회관계는 부족 혈연으로 소규모 집단(15~30명)을 이뤄 우두머리의 지휘에 따라 수렵채취를 하면서 살았다. 둘째, 수렵채취자들은 유대감을 갖고 뭉친 사회였다. 생산이란 없었다. 분업, 자본, 기술 변화도 거의 없었다. 자연이 주는 것에만 의존해 살았다. 그래서 한 사람이 더 가지면 다른 사람은 적게 가질 수밖에 없는 ‘영합게임(zero sum game)’ 세계였다.

이런 환경에서 터득한 경제에 대한 태도가 유전자에 각인돼 그 당시와는 전적으로 다른 경제적 환경에서 사는 현대인의 본능에도 뿌리 깊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인간본능이 형성된 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약 5만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다른 성격의 본능으로 교체하는 ‘생물학적 진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경제에 대한 본능적 성향은 자유, 사유재산, 시장경제, 일부일처제를 기반으로 하는 열린 확장된 사회에는 맞지 않는다. 우두머리에 대한 수렵채취인의 본능적 의존심은 국가를 가부장으로 여기는 온정적 국가관, 그리고 국가가 개인보다 우위에 있다는 국가주의로 확대됐다. 따라서 원시인과 그 후예인 우리 모두는 본능(자연)적으로 집단주의자다. 사회주의 나치즘 군국주의 파시즘 등 지난 세기에 인류를 파멸로 이끈 갖가지 전체주의도 길들이지 못한 이런 본능의 소산이 아니던가.

건강 노후 보육 교육 일자리 등 개인의 삶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복지국가 이념이 오늘날 정치적으로 인기를 끄는 이유도 우두머리의 명령에 따라 나눠먹고 보살피면서 살아가던 원시사회에 대한 본능적 향수 때문이리라.

그러나 사회 규모에 따라 도덕도 달라져야 한다. 소규모 사회의 도덕을 거대한 열린 사회에 적용하는 건 압제와 횡포다. 그 결과는 열린 사회의 기초가 되는 책임정신, 다른 사람의 인격과 재산 존중 등 시장도덕의 손상일 뿐이다.


자연이 주는 것에 의존해야 했던 원시인들은 가진 것의 격차를 용서할 수 없었다. 이윤은 훔치거나 빼앗거나 속인 결과로 이해했다. 노동만이 가치의 유일한 원천이고 그래서 이윤과 이자는 착취의 결과라는 사회주의 논리도 자본 개념이 없던 원시적 사고의 산물이다. 수렵채취사회는 일부다처제였다. 부유한 남자는 다른 사람의 유전적 존립까지도 빼앗았다. 이것이 반부자정서 또는 부의 축적을 악과 연결하는 본능적 성향을 형성하는 계기였다는 게 석기시대 연구자들의 견해다.

오늘날 이런 성향은 무용할 뿐만 아니라 극단적으로 해가 된다. 자유시장에서 부의 획득은 다른 사람에게 편익을 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시장은 영합게임도 아니다. 일부일처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후손을 갖기 위한 투쟁도 불필요하다. ‘선한(악한) 의도는 선한(악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그래서 행동의 결과보다 동기를 중시하는 성향도 원시적 태도라는 진화론의 인식도 흥미롭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소규모 사회에서 특정 행동의 동기와 결과는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그러나 이기적인 개인들이 재화를 생산하고 교환하는데, 여기에는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게 하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가 작동한다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과 같은 열린 사회에서는 동기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행동의 도덕적 가치를 행동의 결과보다는 행동의 동기로 판단하는 원시적 정신은 자본주의를 적대시하고 정부를 선호하는 태도를 불러들였다. 시장은 사익 추구의 장이요 정부는 공익을 추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흥미로운 건 의도가 좋으면 결과도 좋다는 의미로 법을 정하는 입법부의 태도다. 이 때문에 입법의 과잉이 초래됐는데 이것도 소규모 사회에서 살던 원시인의 의사결정 방법과 관련한 정서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선 사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적대감은 석기시대에는 매우 유익한 태도였다. 부족 간 전쟁은 수렵채취인에게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낯선 사람에 대한 불신이 진화했고 불신은 쉽게 적대감으로 전환됐다는 게 진화론의 인식이다. 이런 적대감에서 거래를 제한하는 무역규제가 생겨났다. 그러나 보호무역은 국제적 분업의 축소와 번영의 훼손을 초래한다. 이민 제한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할 기회를, 이민자는 삶을 개선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인간의 본능과 심리가 형성된 석기시대의 특수한 경제·자연환경 탓에 생겨난 게 반자본주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시장경제에 관한 한 문맹이다. 그런 문맹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게 간섭주의·사회주의 정책이다.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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